지도 위에 낭도(狼島)라는 이름이 찍혔을 때, 사람들은 여우를 떠올렸다고 한다. 섬의 모양이 여우와 닮았다 하여 이리 ‘낭(狼)’ 자를 써서 붙은 이름이지만 섬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곳을 ‘여산(麗山)’이라 불렀다.
▲ 낭도전경
이유는 단순하다. 섬의 산이 곱고, 숲이 수려해서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는 마을이 예쁘게 불리기를 원했고, 낭도는 그렇게 스스로를 다정하게 가꿔온 섬이다.
▲전) 전라남도 민선 교육의원
전라남도 명예예술인
사) 여수수필문학회 이사장 윤문칠
여수시 화정면 낭도리. 도심에서 남쪽으로 26.2km 떨어진 이 섬은 면적 5.63㎢, 해안선 길이 19.5km에 이른다.
2024년 기준, 167가구에 249명이 살아간다. 숫자로 보면 작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시간과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섬 동쪽에는 상산(280m)이 솟아 있고 그 외엔 낮은 구릉지들이 부드럽게 펼쳐져 있다.
해안선은 만과 곶이 교차하며 리듬감 있게 굽이친다. 먼 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가 그 곶마다 부딪히며 물보라를 뿜어내는데, 그 모습은 낭도라는 이름보다 ‘낭만’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게 만든다.
이 섬엔 물이 귀했다. 화산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을 곳곳에 우물을 팠고, 그중 한 우물엔 특별한 이름이 붙었다. 예전엔 아이를 낳은 여인이 젖이 마를 때면 남편이 섬 중턱으로 올라가 그 우물물을 떠다 몸을 씻겼다.
▲ 젖샘에서
그러면 놀랍게도 젖이 샘처럼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우물이 젖샘이라 불리는데 지금도 그 우물은 여전히 맑은 물을 머금고 오랜 전설을 조용히 품고 있다.
낭도는 ‘살기 좋은 섬’ 이면서 이제는 ‘찾고 싶은 섬’이 되었다. 2015년 전라남도에서 ‘가고 싶은 섬 1호’로 지정되었고, 낭도와 사도, 추도 등 주변 섬의 폐교를 리모델링해 국제 워크캠프, 공동 식당,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 청소년과 여행자들을 위한 공간이 새로 생겼다.
▲ 상산봉 봉수대
그뿐만 아니다. 낭도엔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는데 공룡발자국이 남은 해변과 주상절리, 신선대, 쌍용굴을 따라 걷는 1코스, 낭만 해변길로 이어지는 2, 3코스는 낭도의 자연을 천천히 체험하게 만든다.
▲ 태초의 신비
이 길을 걷다 보면 ‘섬의 시간’이란 것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빨리 걷는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닌, 오래 머무는 사람이 더 많이 남기는 그런 시간 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와 백중사리 즈음이면 낭도 앞바다의 바닥이 갈라진다.
사도에서 시작해 추도, 간도, 시루섬, 장사도, 나끝, 진대섬까지 일곱 개 섬이 하나로 이어지는 ‘모세의 기적’이 이곳에서도 일어난다.
예전에는 낭도에 닿으려면 여수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사십 분은 넘게 걸렸다. 하지만 2020년 2월, 국도 77호선이 개통되며 조발도·둔병도·낭도·적금도를 잇는 다섯 개의 연륙교가 완성되었다. 이제는 자동차로 단 20분이면 닿을 수 있다.
섬은 더 이상 멀지 않은 곳이 되었다. 그렇다고 낭도가 섬의 시간을 잃은 것은 아니다. 바람은 여전히 느릿하게 불고, 파도는 어제처럼 제 속도로 밀려온다.
▲ 젖샘막걸리 시음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젖샘 막걸리’를 마시고, 갯벌 위를 걷고, 돌담에 기대어 쉬며, 잊고 있던 단어 하나를 떠올린다. 바로 ‘낭만’ 그 말의 고향이, 어쩌면 이 섬이 아닐까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낭도
바람은 늘 먼저 와서
바다의 이마를 쓸어준다.
파도는 조용히 밀려와
섬의 하루를 열어준다.
낭도, 여우의 이름을 가진 섬.
웃음으로 바다를 건너고,
돌담에 기대 앉아
잊고 있던 낭만을 다시 꺼낸다.
▲ 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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