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는 여수시 화정면에 딸린 섬이지만 본래의 이름이 '넘자 섬'이라고 한다. '넘자'의 뜻을 풀어 한자로 표기하면서 '넘'과 '자'로 나누어서 먼저 '넘'은 남이란 뜻의 너 '汝'로 표기하고, 자는 스스로 '自'로 표기하여 여자(汝自)도라고 하게 되었다는 논리다.
여자도(汝自島)는 공중에서 보면 '너 여(汝)'자 형이고, 육지와 거리가 너무나 멀어 모든 생활수단을 '스스로 해결한다.' 는 뜻의 '스스로 자(自)'자를 써 '여자도'라 불렸다고 한다. 여자도 바로 옆에 작은 섬이 송여자도이다.
▲전) 전라남도 민선 교육의원
전라남도 명예예술인
사) 여수수필문학회 이사장 윤문칠
여자도는 대동마을과 마파지마을 두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남쪽의 마파지마을은 남풍, 즉 마파람이 불어오는 마을이라 하여 이름이 붙었다.
섬의 면적은 0.59㎢, 해안선 길이는 7.5km, 2024년 12월 기준으로 99가구 183명(남 94명, 여 89명)이 이곳에 산다.
섬의 역사는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무렵, 남원 방씨가 낙안면에서 들어와 마파지에 정착했고, 이어 초계 최씨가 대동마을에 터를 잡았다. 그 후 세대가 이어지며 섬은 고요히 사람의 숨결을 품어왔다.
여자도는 여수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위치해, 여자만(汝自灣)에 품 안긴 듯 있다. 평균 수심은 3~5m로 얕고, 순천과 벌교에서 흘러드는 민물이 만나 좋은 염도와 비옥한 갯벌을 만든다.
이곳 갯벌은 ‘땅이자 바다’다. 피조개, 새꼬막, 키조개, 맛조개가 자라나고, 낙지와 감성돔이 그 사이를 헤엄친다. 한때 피조개의 고장이었지만, 지금은 전국 새꼬막 생산량의 80%를 차지할 만큼 새꼬막 양식이 성하다.
섬 사람들은 물이 부족해도 이 풍요로운 바다에서 삶을 일군다. 마늘, 보리, 녹두, 고구마가 밭마다 푸르게 자라고, 새벽의 바람에 갯내음이 섞인다. 여자도는 바다를 텃밭 삼아, 해마다 어업으로 풍년을 맞는 섬이다. 섬의 세 마을은 모두 다정하고 소박하다.
사람들은 함께 밥을 나누고, 바다의 일로 하루를 함께 시작한다. 파도와 햇살이 어우러진 이 마을들은 변색이 없는 풍경처럼, 세월 속에서도 따뜻한 빛을 잃지 않았다.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두고, 당시 이장이던 최광오 씨의 제안으로 여자도와 송여자도를 잇는 ‘붕장어 다리’가 놓였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인도교는 사방이 바다로 열린 환상의 길이다. 해안 데크길을 따라 걷다 보면 파도가 밀려와 모래를 쓸고, 그 위로 남도의 햇살이 반짝인다.
밀물 때면 다리 위 강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숭어와 감성돔을 낚는다. 바람 속에서 웃음이 퍼지고, 저녁이 오면 다리 아래로 황금빛이 번진다. 섬 한 바퀴를 도는 둘레길은 대동마을에서 시작해 벚꽃길, 개미허리길, 마파마을, 검은 모래 해변, 붕장어 다리, 송여자도, 상괭이 전망대로 이어진다.
한 시간 남짓의 길이지만, 발걸음마다 바다가 말을 걸어온다. 갯벌에는 게, 서대, 낙지, 새우, 장어가 오가고, 바다에서는 여전히 새꼬막과 피조개가 조용히 숨을 쉰다.
1968년 개교한 소라초등학교 여자분교는 40년 동안 아이들의 배움터였다. 이제 학생이 없어 폐교가 되었다. 젊은 사람은 줄고, 어르신들만 남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갯벌을 밭 삼아 살아간다.
해질 무렵, 육지에서 바라본 여자도는 오렌지빛 노을이 바다에 스며 황금빛으로 빛난다. 사람들은 이 섬을 ‘황금섬’이라 부른다. 그 이름처럼, 여자도는 오늘도 스스로 빛나며 남해의 잔잔한 품속에서 천천히 하루를 살아간다.
여자도
태고의 하늘이 바다를 열고
스무 리 물길 위에
넘자섬 하나를 세웠다.
‘너 스스로’라 불린 여자도.
바람 따라 걷다 보면
다리 위 강태공들 웃음이 번지고,
노을이 천천히 내려앉아
섬이 저녁이 된다.
갯벌 속 꼬막 하나
살아 있다는 숨소리,
붉은 노을이 바다에 번져
섬 전체가 수채화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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