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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특보 속 50년 만의 감격!

평여동 망향비 제막식...그 주민들은 달랐다.

기사입력 2024-06-2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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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땅에 작은 표지석 하나 세우는게 소망이었어....”
 


오늘은 낙뢰를 동반한 호우특보가 발효중이며, 시간당 30mm이상 강한 비가 예상됩니다라는 안전 문자에도 호우특보가 무슨 상관이야!”라며 1회용 간이 비옷을 챙겨 입은 한 원로 노인은 온전하지 못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2024622() 오전 11. 이날은 전남 여수시 평여동 망향비가 완공되어 제막식이 열린다. 하필이면 얄밉게도 올해 처음 발달한 장마전선이 제주도를 강타하고 남해안으로 북상하는 첫날이다.

 

평여동 지역은 여수산단 석유화학단지가 최초로 조성된 곳이다.

 

1974724일 건설부고시 제242호에 따라 평여 74가구, 신흥 16가구, 산본 일부 19가구, 모래등 4가구는 조상 대대로 풍요롭게 살아왔던 정든 고향을 하루아침에 내어주고 짐싸기가 무섭게 떠나야 했다.

 

이들이 떠난 지역에는 당시 호남에틸렌, 한양화학, 다우케미칼, 합성고무 등 4개 공장이 건설되어 여수석유화학 산단이 출발하였다.
 


이주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철거민들은 멀리 떠나지도 못하고 인근 신송 산본마을 등 잔여 토지위에 시멘트블록으로 집을 짓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정부의 조치에 순응하면서 예전처럼 살고 있었다.

 

이들이 거주하는 공장 주변 신송 산본 등 120 여 가구가 또 1987122일 건설부고시 제620호에 따라 철거되어 여수시 선원동(신가곡)과 학동(도깨비시장 위)으로 집단이주를 하였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는 당시 제일모직(현 롯데케미칼 첨단소재) 공장이 건설되었다.

 

꿈에서나 그려볼 수 있는 그리운 고향땅 평여 신흥 철거 50, 신송 산본 철거 37년만에 비로소 망향비가 조성되어 오늘 이주민들이 모여 제막식을 하는 날이다.
 

▲ 집중호우 속에 평여동 망향비 앞에 망향제를 올리는 추진위원 신장호 주기열 한대현 정병운 한진현씨.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그칠줄 몰랐다. 주민들은 야외 망향비 제막식장에 로프줄을 늘리고 그 위에 비닐을 덮어 간이지붕을 만들어 겨우 비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여기저기 빗물이 고여 풍선처럼 부풀어져 곧 터질 것만 같았다. 물빼는 작업이 진풍경이었다.

 

그럼에도 식전행사에 참여한 동백두드림, 한국무용, 민요 예술인들은 고운 치맛자락이 빗물에 젖고 흙탕물이 튕겨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술인이 간직한 내면의 혼을 고스란히 표출해 주었다.

 

행사 관계자는 저기 망향비 뒤편으로 보이는 콘크리트 벽은 남수 저수지의 유일한 수로이고, 저 풍부한 젓줄은 평여-신송-산본마을로 길게 이어져 넓은 평야를 기름지게 하여 풍요롭고 살기좋은 고을을 만들었던 유일한 흔적이라고 말했다.

 

또한 망향비가 세워진 이곳의 황토는 깨끗하고 빛깔이 고와서 예로부터 집집마다 2월 할머니 신을 모시는 제토를 채취하였던 신성스러운 곳이라며, “고향을 잃어버린 우리에게 이곳 망향비가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고, 그 옛날의 향수를 되새겨 보는 마음이 편안한 영원한 쉼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왜 호우특보 속에서도 고향 생각에 젖어 망향제를 올리게 되었을까

 

90대 한 노인은 살아생전 내가 살았던 고향 땅에 조그마한 표지석이라도 하나 세우고 싶었던 것이 소원이었는데 이제야 그 꿈이 실현되어 감개무량하다며,이제는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평여동 망향비는 여수시 예산으로 평여동 986-1번지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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