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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2-05-1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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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필/감성여행 2)『동백의 바다』...금오도 소유실

<여.순 사건의 눈물>

기사입력 2022-01-1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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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 (米岡) 김용필

그녀는 40년 만에 유실로 돌아왔다. 여.순사건의 피앙지, 금오도 소유실은 그날의 비극을 떨치려는 듯 유난히 쾌청했다.

아침 햇빛이 찬란하게 바다 위에서 반짝거렸다. 소유실의 아침은 늘 보석 같은 빛으로 시작된다. 오늘은 파도가 잔잔하고 물빛이 곱고 맑아서 물질하기 좋은 날이었다.

동백은 물질 복장으로 어구를 챙겨 들고 비렁에 앉아 물목 섬이 갈라지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목 섬은 하루에 두 번씩 갈라져서 섬이 되었다가 육지가 되기를 반복한다. 썰물 땐 물목 섬은 육지와 연결된다. 100여 미터 모래톱이 하얗게 드러나면서 섬은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4시간여 하얗게 모래톱을 드러냈다가 밀물이 들며 어느새 모래 등은 물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바다가 갈라져서 모래 등이 자라목처럼 드러난다고 하여 물목 섬이라고 하였다.

 

   물목섬 그곳은 금오도 유송리 소유의 바다였다.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오, 파도여! 금빛 모래여! 행복했던 시절이여. 아름다운 인생이여!’소린 바다를 향하여 퍼져 나갔다. 바닷물이 천천히 갈라져서 모래 등이 허옇게 사구를 이루면서 물목 섬은 육지로 연결되었다. 물 나간 사구의 물웅덩이에 갇힌 물고기가 퍼덕인다. 썰물 때 물목을 넘지 못한 물고기들은 여지없이 모래톱에 갇히고 만다.
 

어릴 때 그녀는 이렇게 모래톱에 갇힌 물고길 주워 담았다. ‘엄마, 물고기 줍기 싫어요. 다 먹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하면서 왜 물고길 거두라고 해요.’ ‘문둥이 가시내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 팔 데가 생길지 누가 알아, 박물장수 아저씨가 올 때 팔면 되잖아.’ ‘박물장수 아저씨가 오려면 닷새는 지나야 해요.’ ‘잔소리 말고 잡기나 해라.’
 

열심히 거두지만 결국은 썩어서 그냥 내 버리곤 하였고 한 달에 두 번 정도 박물방수가 오면 헐값에 판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어머닌 생선을 건어물로 만들어 파는 것을 알았다. 여수시 서정 시장의 길목 목판은 어머니의 장터였다.
 

모래 목 사구엔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갇힌다. 썰물 때 탈출구를 찾지 못한 물고기들이 사구 안 물웅덩이에 갇혀 퍼덕이다가 모래 등에 허옇게 죽어 나자빠진다. 숭어. 농어. 우럭 . 장어, 참돔 할 것 없이 죽어 늘어진 고기가 지천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물목 섬에 방파제가 생기면서 해안이 변하여 모래 등이 거의 없어져서 걸리는 고기가 적었다.
 

소유실(小柳室) 해변 캐슬은 물목 섬을 바라볼 수 있는 언덕에 세워진 궁전 같은 집이었다. 집이 엄청나게 커서 캐슬(성)이라고 하였다. 그녀는 40년을 외국에서 살다가 늘그막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옛집을 헐고 궁전 같은 집을 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유실은 여수시 남면 유송리 소유 마을이다. 버드나무가 많은 동네라서 유실이라 하였고 유실은 그녀가 태어난 집이다. 그녀의 캐슬 궁전(저택)은 거북등 언덕에 지었는데 그 형상이 멀리서 보면 무거운 짐을 지고 물속으로 잠수하는 거북의 모형이었다.
 

그녀는 소유실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았다. 그런데 부모님이 죽고 유실을 떠난 40년 만에 돌아와서 옛 집터에 궁전 같은 집을 지었다.
 

물목 섬은 해산물과 해조류의 천국이어서 물질하기 좋은 곳이었다. 동백은 사구에 갇힌 고길 잡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모래 등에 갇힌 물고기가 지천인데 요즈음은 모래 등이 낮아져서 물고기가 그렇게 많이 걸려들지 않았다. 사구에 갇힌 물고긴 버둥대다가 강렬한 햇빛에 하얀 비늘을 드러내고 죽어갔다. 날쌘 놈들은 물이 갈라지기 전에 이곳을 통과하지만 느린 물고기는 여지없이 사구에 갇혀 버린다.
 

어머닌 물고길 건어물로 만들어 장날에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 팔았는데 그녀는 어머닐 따라 육지로 가끔 나가곤 하였다.
 

동백은 해녀복을 벗어 버렸다. 아무도 보지 않는 해변에서 그녀는 발가벗고 20대 아가씨처럼 몸매를 뽐내 보았다. 예쁘다. 날씬해, 아직은 쓸 만해라고 자찬해 본다. 이 시간은 그녀만의 자유이며 낭만이었다. 걷다가 멈춰 서서 자신의 몸매를 훑어보았다. 70의 나인데도 큰 키에 곳곳하게 세운 몸매와 오목 볼록 드러난 육체의 곡선이 아직도 아름다웠다.
 

그녀는 팔짝팔짝 사구를 뛰어다니며 마음껏 사구를 돌았다. 큰 농어 한 마리가 웅덩이에 갇혀 있었다. 그녀는 농어를 잡아들고 외쳤다. ‘어머니, 농어예요. 쌀 한 되는 바꿀 수 있는 큰놈입니다.’ 그때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다 큰 가시내가 옷을 벗고 야단이람.’ ‘옷을 벗고 물질을 하라면서요?’ ‘누가 본다, 옷 입어라.’ 그땐 어머닌 늘 소리쳤다. ‘갯벌에선 옷을 벗어라. 갱물이 묻으며 옷 삭는다.’ 어머닌 갱물에 옷을 적시면 삭는다고 늘 그렇게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 말씀대로 발가벗고 물고길 잡곤 하였다. ‘난 자유인이다. 왜 옷이 필요해, 이렇게 좋은 것을....’ 나체로 물고길 잡는 별난 재미였다. 그녀는 발가벗은 채 사구를 걸었다. 한적한 곳이라서 아무도 그녀의 모습을 보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피곤해서 늦게까지 자고 있었다.

“선생님, 오늘 갯일 하는 날이에요.” 김씨 아저씨가 잠을 깨웠다.

“그래요, 오늘 청각을 따러 가는 날이죠?”

물목섬 벼랑은 김. 다시마. 청각 같은 신선한 해산물이 번식하기 좋은 곳이었다. 특히 파래. 톳은 질 좋기로 이름나 있었고 갯가 벼랑엔 홍합이 무리 지어 생식하고 전복이 군락을 이루어 서생하였다. 바위에 뿌리박은 홍합이나 해초를 따고 물 밑 바위가 깊이 드러날 때 해삼과 전복과 소라. 키조개를 딴다. 물질하기 참 좋은 날씨였다. 김씨 아저씨가 보디가드로 따라나섰다. 해녀복으로 갈아입고 물질로 나섰다.
 

“선생님, 오늘은 물이 깊어요. 욕심내지 말고 적당량만 따셔야 합니다.”

동백은 공기 주머닐 띄워놓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한번 물속에 들어가면 3.4분은 자맥질을 하여야 홍합과 전복을 딸 수 있다. 한 시간여 물속을 들랑거리며 홍합과 전복을 채취하였다.
 

소유실의 홍합은 씨알도 크고 맛도 좋았다. 그녀는 잡은 홍합을 삶아서 건어물 덕장에 널고 잘 말린 홍합은 독일의 아이들에게 보냈다. 덕장엔 항상 홍합과 전복, 배를 갈라 편 감성돔과 참돔, 해초들이 햇볕에 고들고들 잘 마르고 있었다. 그녀는 건어물을 뒤집어 놓고 삶은 홍합을 덕장에 펴서 널었다. 이렇게 작업하는 시간이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옛날 어머니가 하던 그대로 생선과 해초를 말려 질 좋은 건어물을 만들어 독일에 있는 자식들에게 부쳤다.
 

어머닌 건어물을 만들어 팔아서 쌀과 곡식을 사 오셨다. 그래서 늘 갯벌에 나가면 쎄게, 쎄게, 빨리, 빨리 닥달을 한다. ‘뭘 꾸물대고 있어. 빨리 따라오지 못해. 물 들면 갯것(갯벌일)을 못 한단 말이다. 갯것은 돈이야. 돈을 벌어야 곡식을 사서 먹지.’ 어머닌 늘 어린 딸에게 일을 못 한다고 꾸짖었다. 동백은 둥주릴 짊어지고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해물을 거두고 덕장에 말리는 일을 하였다.
 

손발이 부르트고 갈라져도 어머닌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딸에게 일을 시켰다. 마치 의붓딸처럼 부려먹었다. 그래야 생계를 이을 돈이 나온다고 황소처럼 일을 시켰다. 어머닌 말린 어물을 육지로 가져가서 팔아 쌀을 바꾸어 올 땐 우리 집은 부자가 된다. 어머니가 해물과 바꾸어 오는 식량은 그런대로 한겨울을 날 수 있었다. 그러나 동백은 갯일과 물질하기 싫어서 섬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녀에겐 이 바다를 떠나는 것이 큰 소원이었다.
 

“선생님, 오늘은 무슨 요리를 할 겁니까?”

“네덜란드식 홍합 요릴 하려고요.”

“국물을 내서 양념을 하나요?”

“네덜란드식은 찜 홍합이죠. 세계 10대 요리랍니다.”

독일에선 뉴질랜드의 그린 홍합을 즐겨 먹었다. 여러 나라 홍합을 먹어봐도 우리나라 금호도 유실에서 나는 홍합만큼 맛있는 것은 없었다.
 

동백은 태풍으로 부모님을 잃고 유실을 떠났다. 태풍이 불던 날 부모님은 폭풍의 파도 속에 휘말려 허허바다로 떠밀려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악마의 바다는 그렇게 부모님을 앗아갔다. 그리고 그녀는 소유실을 떠나 외삼촌 집에서 살다가 간호사로 독일로 떠났다. 그리고 다시는 그 바다를 찾지 않으려고 했는데 말년에 부모님이 생각나서 찾아온 것이다.
 

아버진 평생 어머니 앞에선 숨조차 크게 쉬지 못하였다. 왜 그렇게 어머니 앞에서 쩔쩔 맺는지 모른다. 그런데 어머닌, 어머니대로 아버진 의식하지 않고 쉴 틈이 없이 갯일을 했다.
 

동백은 소유실에 와서 낮엔 바다낚시와 물질로 해산물을 거두어 말리고 밤이면 그림을 그리며 한시도 육체를 놀리지 않았다. 따라서 신경쇠약증과 우울증이 덜 해갔다. 잠이 오지 않으며 그녀는 이젤 앞에 앉았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지평선 끝 바다에서 걸어오는 구릿빛의 근육을 가진 건강한 아버지를 그리고 있었다.
 

한참 작업을 하는데 그림이 잘되지 않았다. 그만 붓을 던지고 해변으로 나가서 어두운 해변을 미친 듯 뛰었다. 칙칙한 소금기가 피부에 와 닿을 때마다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물목섬으로 내닫고 있었다. 그리고 외쳤다. 아버지, 아버지. 대답 없는 바다, 파도는 사납게 사구를 무너뜨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어두운 바다를 향하여 다시 소리쳤다. ‘어머니 물이 들어와요.’ 그래도 어머닌 바다에 서 있었다. 금오도 유실은 어머니에겐 무서운 감옥이었다.
 

여.순 사건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 소녀는 이곳으로 쫒겨 왔다. 검은 섬, 바람과 파도가 거칠고 세상과 결연된 사람이 살 수 없는 섬이었다. 이 섬에서 누구도 소녀의 아픈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금오도는 천혜의 바다 풍경을 관조할 수 있는 낭만의 섬이다. 비렁길 트레킹은 삶에 지친 사람들에겐 최고의 힐링 장이었다. 여수에서 배를 타고 금오도 함구미항에 내려서 좌우를 살펴보면 오른쪽은 서남으로 가는 비렁길, 왼쪽은 북동으로 가는 물목 길이란 푯말이 보인다. 비렁길은 거북의 배 부분으로 도보 코스다. 해안을 따라 걸으며 청석 비렁의 절경을 체험할 수 있다.
 

물목 길은 최상의 드라이브 코스이다. 여천항에서 버드나무 해변 숲을 달려가면 유송리에 이른다. 유송리는 대유와 소유가 있는데 우학리까지 최상의 드라이브 코스였다. 이 도로를 한참 달리며 물 목섬에 이룬다.
 

그녀가 유실에 캐슬 팔레스를 지은 것은 솔직히 말해서 아늑한 노후를 즐기려는 휴양이 목적이 아니고 부모님의 영혼을 달래려는 의도였다. 화실에 앉아 있으며 지친 머리와 육체의 피로가 싹 풀린다. 싸아, 싸아, 바윗돌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오케스트라처럼 은은하게 울려온다. 그녀의 눈빛은 어둠의 바다에 꽂혀 있었다. 어둠의 바다에서 뭔가 찾으려는 절규어린 감정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억센 뱃 사나이가 다가온다.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그녀가 그리는 아버지다.
 

독일에서 오래 살다보니 향수병에 걸렸다. 그래서 고향에 집을 짓고 싶어서 대사관에 연락하여 강승규 건축사를 찾았다. 옛 남자 친구였다.
 

‘전 독일에 사는 한국 사람인데 귀국하여 여생을 편히 지낼 집을 갖고 싶어요. 여수 금오도 소유실 해변에 집을 하나 지으려고요. 은퇴하여 살집인데 바다 전망을 관조할 수 있는 집을 선생님 취향대로 멋지게 지어줘요.’

낮선 외국 여인의 요청을 받고 강승규 건축사는 금오도 소유 해변을 찾아가서 유실의 집터를 둘러보고 해변 저택의 설계도를 그녀에게 보냈다.
 

‘훌륭합니다. 그대로 지어주세요.’

건축 예술의 명인인 강승규 건축사는 그녀의 집을 짓기 시작했다. 마침내 유실의 언덕에 3층의 궁전 같은 저택이 올라섰다. 건물은 마치 거대한 배가 출항하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오실(鼇室)’ 이름을 붙였다.
 

오실의 캐슬은 그녀에게 아픈 추억을 들추게 하였다. 사실 유실을 떠난 것은 부모의 죽음 때문이었다. 1959년 9월 19일 사라호 태풍이 금오도를 강타하여 무서운 파고가 동백의 부모님을 앗아갔다. 12살 때 겪은 악몽이었다. 집은 해일 속에 묻혀버렸고 부모님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부모를 잃은 그녀는 여수의 외삼촌 댁에서 자랐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독일로 파견되었다.
 

그녀의 소유실의 캐슬은 그녀가 살기엔 너무나 큰 집이었다. 돌상어가 오르는 시절이었다. 동백은 돌상어를 낚고 싶어서 김씨를 불렀다.
 

“김씨. 돌상어가 먹고 싶네요. 우리 돌상어 낚시가요.”

“그런데 돌상어 낚시를 하려면 먼 바다로 가야해요.”

“그래도 가요.” 김씨는 낚시 도구를 챙겨 배에 싣고 소리도로 나갔다. 돌상어가 자주 출현하는 길목에 낚시를 드리웠으나 파고가 거칠어서 입질조차 안했다. 진종일 기다려도 돌상어는 걸리지 않고 참돔만 걸려들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등대가 불을 켰다. 물살이 거칠어지면서 해풍이 차갑게 얼굴을 스쳤다. 몸이 이상했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오래 씌어선지 폐렴 증상이 있어서 되돌아왔다. 여수로 나가서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 왔으나 거동이 불편했다.
 

동백은 바다를 보면 울먹였다. 아버지의 그 원망스런 눈빛, 어머니의 원한에 찬 저주의 눈빛, 겉으론 좋은 것 같지만 항상 경계하고 살았다. 왜 그러는지, 그 사정을 몰랐는데 그 사정을 안 후론 어머니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이 바다에 온 것은 복수였다. 혼자 있으면 바다는 외로움을 가중시키고 죽음을 유혹한다. 푸른빛이 주는 중압감이라고 할까, 바다가 육지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넓은 바다를 내달리고 싶은 충동이 이는 것이다.
 

동백은 물목 섬으로 나갔다. 바다가 갈라진 사구를 한창 걷고 있노라니 마음이 후련 해졌다. 잔잔한 파도가 평화롭게 밀려오다가 갑자기 요동을 치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 같았다. 그녀는 모래사구에 서서 눈을 감았다. 갑자기 폭풍이 일 것 같이 눈앞이 깜깜해졌다. 폭풍이 한바탕 불어 닥칠 저 바다에서 어머니가 성난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썩을 년아, 밥을 먹었으면 밥값을 해야 할게 아니냐. 갯것은 물때를 놓치면 못 하는 것 알잖아. 전복은 오래 두면 녹아버리고 홍합은 늙으며 쫄아 버린다. 날 좋고 물 좋을 때 빨리 거두는 것이 돈이다.’ 어머닌 늘 그렇게 아홉 살 난 어린 딸을 물목 섬으로 내몰았다. 그때는 엄마가 미워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동백이 고향을 떠나 독일로 가던 날, 외삼촌은 그녀를 불러 세웠다.
 

“네게 꼭 이룰 말이 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것 알고 있습니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습니다.”

“알고 있었구나.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이유를 차마 말할 수 없구나.”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것은 여순사건의 후유증이었다. 어머닌 사라호 태풍을 이용하여 남편에게 복수한 것이다. 두 분은 부부이면서 평생 원수였다. 어머닌 15세 되던 해 여.순 사건으로 부모님을 잃었다. 고아가 되어 슬픔에 젖어 있는 소녀를 농간한 것은 진압군 장교였다. 강간당해 그녀는 사생아를 낳았다. 바로 그 아이가 동백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뒤늦게 양심의 가책을 느낀 진압군 장교가 그녀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녀와 결혼을 하였다. 그렇다고 어머닌 아버지를 용서한 것은 아니었다. 고통의 굴레 속에 매어두고 괴롭혔다.
 

1948년 10월 19일 전라남도 여수시 신월리에 주둔하고 있던 14연대의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 출병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군부 내 좌익 군인들의 반란으로 무고한 여수 시민이 학살당했다. 외할아버지 부부는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진압군에게 무참히 학살당했다.
 

제주 폭동 진압 파병에 불만을 품고 있던 김지회 중위와 지창수 상사를 비롯한 남로당 하사관들의 반란을 도모하였다. 반란군은 여수 시내로 진격하여 경찰과 우익 인사들을 무참하게 처형하였다. 그리고 반란군은 순천으로 진격하였다. 사기가 높아진 반란군은 22일에는 전남 동부 지역의 6개 군을 장악하였다. 여수, 순천 지역에 계엄령이 발호 되었고, 승기를 잡은 진압군은 23일, 순천을 장악하였다. 반란군 주력 부대는 백운산과 지리산으로 도주를 하였고 진압군은 잔당 소탕에서 나섰다.

계엄군은 여수 시민을 거의 다 빨갱이라고 간주하고 무자비하게 가담자 색출과 부역자 색출로 무고한 여수 시민을 학살하였다. 10월 24일, 반란군 토벌사령부의 송호성 준장이 반란군 소탕 작전을 펴면서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10월 25일, 여수. 순천에 암거하는 남로당 세력을 소탕하라는 재차 탈환 작전을 명령했다. 바다에서 함정이 대공포로 여수 시내를 강타하였다. 장갑차, 박격포의 지원을 받은 4개 대대 전차대와 항공기, 경비정이 동원된 포위전을 폈다. 그러나 이미 반란군의 주력이 빠져나가고 극소수의 반란군이 남아서 대항하였다. 이틀간에 걸친 시가 전 끝에 10월 27일 여수는 불바다가 되었고 반란군은 완전히 소탕되었다.

 

장갑차와 박격포 등을 동원한 소탕 작전은 여수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군인들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전라남도 동부 지역의 민간인 2,500명이 희생되었고 3,800명이 실종되었다. 진압군은 동백의 외조부모를 처형해 버렸다. 외동딸은 울면서 이웃 사람의 도움으로 부모님 시신을 거두었다. 청천벽력이었다. 소녀는 졸지에 고아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진압군 장교는 소녀를 차에 태우고 낮선 해안으로 데리고 가서 소녀를 성폭행하였다.
 

소녀는 부모가 처형당하고 성폭력까지 당해 만진창이가 된 몸으로 금오도로 도망을 갔다. 그런데 15세 소녀는 아비 없는 아이를 낳았다. 바로 이 아이가 동백이었다. 그런데 한국 전쟁이 끝나고 진압군 장교가 금오도로 찾아와서 사죄하고 결혼을 하였다. 아버진 사죄하는 마음으로 아내를 위했으나 어머닌 남편을 용서하지 않았다. 동백은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사라호 태풍이 불던 그 날밤, 어머니가 부엌칼로 아버지의 가슴과 목을 찔러 폭풍의 바다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린 동백을 버드나무 가지에 묶고는 폭풍이 몰아지는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거센 파도 속에 휩싸여갔다.
 

지금에 와서 동백은 비로소 어머니를 이해 할 수 있었다. 세상의 누구도 그 어느 여인도 그런 상황에서 남편을 죽였을 것이다. 그녀는 밤바다를 헤매고 돌아와서 이젤 앞에 섰다. 덮어 놓은 그림을 들추어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화폭에 물감을 뿌렸다. 섬은 하얀 백색에서 푸른색으로 변하더니 이젠 검은 섬으로 변했다. 그리고 물목 섬 갯바위 뒤에 앉아 있는 사나이에게 검은 물감을 퍼부었다. 화폭은 어느새 검은 물감으로 덮여 버렸다. 그림이 누더기가 되었다.
 

‘아버지 당신은 죽어야 했습니다.’ 동백은 아버지의 데드마스크에 물감을 붓고 외쳤다. 그녀는 오랫동안 그리던 아버지 초상화를 뭉개버렸다. 그리고 이젤의 화폭 앞에서 쓰러졌다. 창을 통해 보이는 물목 섬의 검은 비렁을 파도가 세차게 두들기고 있었다. 바다가 갈라지고 있었다. 물목 섬이 육지와 연결되는 사구가 허옇게 정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침에 캐슬지기 김씨가 마님을 뵈러 작업실로 올라왔을 때 싸늘하게 죽은 그녀를 발견하였다. 김씨는 혼자 장례를 치를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그는 유서 한장을 남겨 두었다. 건축가 강승규 사장님께 보내는 유서 였다. 김씨는 강승규 사장에게 전화를 하였다. 강승규 사장이 급히 소유실로 내려왔다. 유서를 그에게 전했다.
 

‘강승규씨, 사랑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첫 남자였어요. 미안해요. 독일에서 3년 만 근무하다가 오려고 했는데 가련한 한국인 광부를 만났어요. 그를 두고 올 수가 없었어요. 내게 해변 캐슬 궁전을 지어준 것 고마워요. 늘그막에 한국에 와서 더 행복 했어요. 사랑했습니다. 여인은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인가봐요. 당신이 항상 내 마음속에 있어서 고마웠어요. 가면서 별말을 다 하는군요. 끝으로 내가 승규씨께 바로 유실의 캐슬 궁전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최고의 명작으로 만든 집이잖아요. 이 집 주인은 진정 당신입니다. 사랑했습니다.’ 강승규 사장은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마님이 사장님을 몹시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늘 사장님 이야길 했어요.”

“무슨 병을 앓았나요?”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었어요. 마님은 진정으로 이 바다를 사랑했어요.”

물목섬 사구는 생명을 죽게 하는 자연의 그물이었다. 이곳을 지나던 물고기가 운이 나쁘면 바다의 모래 목에 갇혀 오도가도 못 하고 죽고 마는 것이었다. 아버지도 그랬다.
 

“죄송하지만 김씨 아저씨가 이 캐슬을 관리해 주십시오.”

강승규 사장은 그녀의 화실로 올라가서 먼바다를 응시하였다. 물목 섬에 물이 갈라지고 있었다. 어느새 하얀 모래 목이 드러났다. 그 모래 위를 걸어가는 동백의 모습이 보인다. 해녀복을 입고 물질 장비를 둘러멘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섹시 했다. 동백의 바다였다. ‘잘 가요. 당신이 생각날 겁니다. 나도 한때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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