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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오후 2:04:20 입력 뉴스 > 사설&칼럼

(김용필/ 3.1절 에세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고해”



  . 할머닌 일본군 위안부였다.

 

▲ 소설가 : (米岡) 김용필
 일제는 평화로운 가정을 산산 조작 내 버렸다. 할아버진 결혼을 하자마자 학도병으로 끌려가고 할머닌 혼자 유복자를 낳았는데 불행은 연행되어 할머닌 정신대로 끌려갔다.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을 받다가 위안소를 탈출하여 방랑하다가 해방이 된 한참 후에야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할머니는 유복자를 잘 키웠다.

 

어느 날 아버진 할머니 앞에 꿇어앉았다.

 

‘어머니, 일본으로 가렵니다. 일본에 왜 가? 아버지를 찾아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겠어요. 아서라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사람이다. 내 손으로 아버지를 해친 자들을 찾아 죽일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버려라. 허무한 짓은 삼가라.’ 할머니가 노발대발하셨다. 아버진 할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떠났으나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할머닌 늘 아버지의 그림자에 갇혀 사셨다. 그런 할머니를 바라보는 내 마음엔 항상 슬품이 드리워져 있었고 할머니 가슴엔 우울한 잔영이 그늘져 있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아들에 대한 미안함이 일본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글거렸다.

 

그 암울한 고해(苦海)의 그림자를 차마 볼 수 없었다. 할머닌 남편과 아버지를 그리는 표정엔 언제나 근심이 깃들어 있었다. 어쩌다가 쾌청한 날씨엔 가을 들판의 찬란한 햇빛을 받고 풍성하게 자라는 곡식처럼 화색이 밝았다가도 옛일이 생각나면 어느새 먹구름 같은 표정으로 굳어 버린다.

 

습관적인 불만이 늘 우울로 그늘져 있었다. 밝은 표정 뒤에 갑자기 엄습하는 우울한 기억은 항상 할머니의 마음을 쓰리게 하였다.

 

그것은 지난날 위안부 성노예로 살았던 슬프고 무서운 잔영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할머닌 서슬 퍼런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가서 청춘을 송두리째 유린당한 분이다.

 

할머닌 지난날의 악몽이 회상될 때마다 몸부림을 쳤다. 그것은 우리 할머니뿐 아니라 일제 강점기 때 위안부로 끌려갔던 모든 여인의 참혹한 고통이었다. 인간 살육의 학대와 고통의 몸부림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은 악몽이었다.

 

“상혁아,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 살아있을지 몰라.”

“네, 태평양 전쟁터를 찾아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찾을 것입니다.”

일본군 해군소령, 야스야마 고도시( 김현준)는 태평양전쟁 때 징용 병으로 끌려가서 희생당한 분이다.

 

1941년 18세의 나이로 결혼한 이듬해 할아버진 학도병으로 징용되고 유복자 아들을 낳은 할머닌 다음 해에 정신대로 끌려가서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다. 그런데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왔으나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유복자 아들은 시고모님이 잘 길러줬다. ‘미안해, 아들아,’할머닌 아들에게 늘 죄인이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저 여자, 일본군의 접대부 였대.’라며 비웃고 멸시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닌 부끄럽고 무서워서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창피해서 어떻게 사느냐고 통탄했다. 그 소린 아들을 괴롭혔고 손자의 귀에도 들려왔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에게 따졌다.

 

“아버지는 일본군 군인이었고 어머닌 일본군의 색시였다면서요? 아이들이 친일파라고 놀려요?”

“그래서 너도 어머니가 창피한거냐?”어머닌 눈을 부릅뜨고 아들을 나무랐다. 그런데 아이들은 손자에게도 고통을 주었다.

 

“너의 할머닌 일본군 색시였고 할아버진 나쁜 친일파 군인이야.”

“할머니, 아이들이 나라를 판 친일파 손자라고 놀려요.”

“누가 그래,.....상혁아, 아니란다. 우린 친일파가 아니란다.”

“사람들이 모두 내게 친일파 위안부 손자라고 놀려요.”

“내 말을 잘 들어, 남들이 뭐라고 해도 할머닌 친일파가 아니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진저리쳐지는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할아버진 학도병으로 끌려가서 일본군 장교가 되었고 할머닌 정신대로 징발되어 일본군을 상대로 한 위안부였다. 아버진 그 소리가 듣기 싫어서 할아버지를 찾아 집을 나갔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할머닌 항상 말했다.

 

‘일본 놈들이 조선인을 개 취급했단다. 선량한 백성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고 수만의 학도병과 징집군인, 정신대와 군무원을 노동군으로 전장에 몰아넣고 죽였다. 700만이란 이 나라 젊은이가 사라졌단다.’

 

전쟁의 가혹한 폭행에 학살과 공포 속에서 죽은 자와 산 자의 명암은 달랐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산자는 할 말이 많았다. 세상이 바뀌어 독립했으나 고통은 연생 되었고 그들의 생사와 그 고통을 해결해 줄 사람은 없었다.

 

한 시대를 잘못 만난 사람들이 가해자였고 피해자였다. 친일파들이 애국자로 둔갑하여 날뛰는 바람에 죽은 자나 살아서 돌아온 자들 가족의 고통은 더해갔다.

 

 . 친일파는 역사 앞에 사죄하라.

 

친일파 놈들이 나라를 팔아먹어 백성은 지옥 같은 고통을 겪어야 했는데 그들이 후예들은 늑대를 가죽을 벗고 선량한 양으로 변신하여 부를 누리고 산다. 야속한 것은 망각이었다. 모두가 일제 치하의 생지옥의 고통을 다 잊어버렸다. 젊은이들의 말이 더욱 기가 막힌다. 마치 외계인처럼 말한다.

 

‘왜 일본을 싫어하는지 모르겠어. 그 시대는 그랬다고 쳐, 지금은 아니잖아. 이웃 나라를 욕해선 안 되지.’ 심지어 피해자의 후손들까지도 한 세기 동안에 일어났던 조부들의 이야길 망각해 버렸다. ‘우리가 왜 그 고통을 연식 해야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문제는 친일파들이 슬픈 역사를 만들었는데 그때의 이야길 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상혁은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친일파들이 망친 역사를 국가도 방관했고 지도층이 무지 때문에 왜곡의 역사는 진정한 역사로 변했다. 진실이 왜곡되어 가족 간의 견해도 시시각각이다. 할머닌 늘 통곡했다.

 

‘왜곡의 역사를 믿으라고. 이 무슨 개만도 못한 인간들의 망동이란 말인가,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민족과 가족이 겪은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는 것이 후손으로 취할 태도인가.’

 

역사는 그렇게 왜곡되고 조작된 연극을 즐기며 사라지고 있었다. 일제는 36년간 수많은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의 포화 속에 처넣고 죽였다. 그러나 간신히 목숨을 구해 살아와서 그때 이야길 하는 사람들을 정신병 환자나 치매 노인으로 취급해 버렸다.

 

할머닌 자신이 겪은 고통보다 과거를 잊어버린 사람들의 행각이 더 가슴 아프다고 하였다.

 

해방되어 귀국했으나 할머닌 전쟁이 남긴 상처로 피폐한 인생을 공포로 사셨다. 그리고 일본이 망하길 기다렸고 상처받은 아픔을 보상받으려고 노력했지만 국가의 실수로 한 세기가 지나도록 그 바람과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본군의 위안부였다는 창피스러운 불명예 때문에 거의 은둔의 암흑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 잔영은 평생 할머니를 괴롭혔다.

 

“상혁아, 기회가 되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찾아보아라.”

“행방불명은 죽은 거잖아요.”

“내사 허무한 생각을 하는구나. 난 기필코 일본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죽을 것이다. 화산이 폭발하고 지진이 일어나서 열도가 쪼개지던지 해일이 쓸어 가라앉길 기다린다. 내 생전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죽어서 일어날 것이다.”

 

  . 야스쿠니 신사의 한국인 유해를 송환하라.

 

상혁은 할머니의 비망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렇게 찾던 할아버지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의 전쟁 영웅으로 안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준씨, 왜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 있어요? 당신은 그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랍니다.’ ‘살려줘요, 나도 몰라요.’ 일본군 해군 소령 야스야마 고도시(김현준)은 죽어 2,200명의 한국인 청년들과 같이 그곳에 안치되었다. 어쩔수 없는 운명이며 약소민족의 한이었다.

 

할머니의 비망록을 읽고 아버지는 할아버지 유해를 찾으러 일본으로 갔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일본인이 죽인 것이다. 할머닌 가슴에 맺힌 상처와 울분이 폭발할 때마다 소리를 질렀다.

 

‘네놈들은 망해야 한다. 이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어떻게 인간이 자국의 영달을 위하여 이웃 나라를 괴롭히고 개인의 인권을 짓밟고도 사과 한마디 없단 말이냐.’

 

일제 강점기의 치욕 사는 조선과 조선인의 삶을 짓밟아버렸고 전쟁의 아픔과 상처를 주었다. 강제 징집으로 700만의 청년들이 죽었고 2,000만 조선인의 삶이 망가져 버렸는데 우리는 왜 그들을 용서하려고 하는가.

 

친일파들을 척결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해방 후에 마땅히 처단되어야 할 친일파들이 위장의 탈을 쓰고 선량한 지식 자로 둔갑하는 바람에 역사는 꼬이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승만 대통령이 그들을 이용하여 쉽게 정권을 잡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친일파들이 새 정부의 일원으로 등장하였다. 조선인 출신 총독부 인사들과 일부 친일파 지성인들은 조선의 청년들을 강제징용으로 끌어내고 위안부에 지원하라고 앞장을 서서 선동하고 충동하는 나팔수로 총독부 훈장을 받던 놈들이 애국자로 둔갑하였다.

 

할머닌 일본군 정신대 위안부로 끌려갔던 후유증으로 거의 공황 상태의 인생을 사셨다. 누구를 원망하며 누굴 증오할 것인가, 국가는 백성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지 못하고 앞서 짓밟아버린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일제는 조선인을 무참하게 식민 노예로 부려먹었고 전쟁터로 몰아 죽였는데 한 점 뉘우침이 없었다. 그 고통을 일본은 외면했고 한국 정부도 보상은커녕 언급조차 안 했다.

 

할머니의 뇌리에 그 악몽이 점철되어 있었다.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었다. 할머닐 위안부로 떠밀었던 조선총독부 친일파 공무원들은 화려하게 부상하여 독립된 조국의 지도자로 등장했다.

 

‘미친 새끼들, 왜 저들에게 정권을 주었는가.’할머닌 멍든 후유증을 지우려고 해도 잠재된 후유증은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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