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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6-26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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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의 전설)신월리 14연대 터 “민주주의 역사관을”

기사입력 2009-04-1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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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신월리 14연대 터에 민주주의 역사관을 건립하자”

      

                                                       소설가 : 김 용 필

 

 

1. 여수.순천 사람들의 가슴에 한과 슬픔을 남긴 군란.

 

1948년 공산빨치산들이 여수 신월리 주둔 14연대에서 군란을 일으켰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여수. 순천 사람들의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다. 끝나지 않은 전쟁, 군란으로 야기된 사건인데 마치 여수 순천인의 행위로 매도되었던 여순사건, 그런데 그 사건의 명예는 물론 희생자 보상이 안 되었고 그 현장마저 숨겨져 있다.

 

여. 순 군란의 희생자에 의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태동되었다. 그러나 그 역사 태동의 한스런 현장이 개방되지 않고 있음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1948년 미군정은 남한만의 총선거로 대한민국을 탄생시키려고 하였다.

이에 제주도에서 남로당 분자들이 총선거를 반대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정부에서는 광주에 주둔한 제4연대를 여수 신월리에 이동시켜 제주사건을 진압하려고 하였다. 제4연대 500여명의 병력과 여수. 순천 지원병 300명, 합 800명으로 14연대를 창설하여 제주 반란진압군을 만들었다. 이에 남로당 공작단이 병영에 침투하여 파병을 반대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새 연대장 박승훈으로 교체된 후 1948년 10월 19일 14연대에서 하사관이 주축이 된 군란이 일어났다. 영내 좌우익 교전으로 수많은 군인이 죽었다. 병영을 장악한 반란군은 시내로 나와 경찰과 시가전을 벌이며 우익인사를 색출하여 처형 하였다.

 

애매한 경찰과 민간인을 우익으로 몰아 죽였다. 여수를 장악한 반란군은 순천으로 진격하여 순천 경찰서에서 격전을 벌였다. 빨치산 남부군과 접선이 안 된 반란군들은 4연대 진압군에 의해 사살되고 일부는 지리산으로 도주를 했다.

 

마침내 반란이 진압되고 진압군은 반란군에 동조했거나 조금이라도 협조한 민간인을 빨갱이로 몰아 처형 하였다.

 

피해는 엄청났다. 반란군이 죽인 경찰과 우익단체 민간인이 3,000여명, 진압군이 빨갱이로 인정 하였거나 반란군에 동조 했다고 인정한 민간인 2,000여명이 처형되었고 행방불명이 된 수가 3,000여명, 합 8,000여명이 희생되었다고 비공식 조사 보고된 바 있다. 아무튼 이렇게 군란의 피해는 순전히 여수. 순천 사람들만의 희생과 상처로 남았다.

 

2. 이데오르기 각축장이었던 신월리 14연대 병영은 어디에 있었는가?

 

여순 군란의 진원지인 신월리 14연대는 어디에 있는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신월리에서 웅천에 이르는 해변의 중앙 지점에 14연대 병영이 있었다.

 

여수시 신월동 여수 **화학 공장이 선 그 자리가 바로 제14연대 병영이었다. 그런데 역사적인 현장에 화학 공장이 들어선 후 역사적 비사가 숨겨져 버렸다. 신월리의 참화, 여수인의 한이 서린 역사의 현장을 이제는 개방하여야 한다. 먼저 **화학 공장을 이전시키는 문제가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2012년 여수 엑스포를 위하여 신월리 14연대 병영 앞 해변은 종합적인 해양리조트 유락휴양단지로 개발하는 계획이 수립되어 있다.

 

이 해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직선 8킬로 미터의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해변이다. 이 해변에 국제적인 해양 휴양시설이 조성된다면 천혜의 인공 명소가 될 것이다. 이를 즈음하여 14연대 병영을 역사적인 유물로 만들어 개방하고 참화의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3. 억울한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이데오르기 각축장인 여순 군란으로 무고한 여수 시민과 순천 시민이 2만 여명이상 희생되었다. 물론 반란에 가담한 사람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고 이념의 회오리에 휘말려 죽은 사람도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희생자는 반란군에 의해서 희생되었고 진압군에 의해서도 무고한 시민이 반란가담자란 죄명으로 수백명 처형되었다. 그런데 진압 과정에서 생긴 오류라며 진상이 규명되지 않은 채 묻혀버린 것이다. 수차에 걸쳐 진상을 규명하자는 움직임이 일었으나 정확한 사망자조차 파악되지 않은 채 역사 속으로 묻혀 가는 것은 후손을 속이는 일이며 또 한 번 유가족을 학살하는 행위이다.

 

제주 4,3사건이 재조명 되어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여순 사건도 진상이 규명 되어야 하고 피해자 보상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가해자를 처벌할 수는 없다. 다만 억울한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하는 차원에서 해결 되어야 한다.

 

혹자는 반란을 진압하면서 이루어진 실수라고 하고 이미 끝난 역사라고 하지만 어떻게 무고한 백성이 처형당했는데 끝난 역사라고 하겠는가?

지금도 피해가족은 빨갱이란 누명을 쓰고 불명예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사의 옳고 그름은 규명되어야 한다.

 

하루속히 군란의 14연대 현장을 개방하고 국가가 나서서 억울한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만이 피해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며 인권을 존중하는 성숙한 대한민국의 국력의 위상인 것이다.

 

4. 14연대 터에 역사관을 건립하자.

 

여수 군란의 진압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바로 섰다는 의미에서 여수 군란의 진상을 널리 알릴 역사관을 건립하여야 하고 억울한 희생자의 영혼을 추모하여야 한다.

 

이데오르기의 각축장이 되었던 신월리 14연대 터에 민주주의 역사관을 건립하고 당시 반란의 진상과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황을 기록하여 역사적인 자료로 남겨 후손에게 옳고 그른 역사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억울하게 처형된 피해자의 진상부터 파악해야 할 것이다. 누가 할 것인가? 피해자 가족과 양심 있는 여수시민의 역할을 기대하며 관은 이를 적극 도와줘야 한다.

 

▲ 1948년 당시 14연대가 주둔 하였던 전남 여수 신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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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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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냥
    2009- 04- 20 삭제

    군인진압이 들어가면서 민간인들의 피해가 많을것으로 보이네요...어쨌건 수많은 피해자유족등에대한 정부차원의 조사와 보상등이 필요할거로 보이네요

  • 독자
    2009- 04- 20 삭제

    억울한 피해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진실과 화해, 그리고 민주와 평화의 역사관이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 여순사건
    2009- 04- 20 삭제

    좋은 글인데요.... 피해상황에서 군인의 진압이후 무고한 민간인 희생(즉 군경에 의한 피해)이 많았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어느 자료를 인용했는지 모르지만, 바로 잡아 주었으면 합니다.